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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말, 정신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나는 대학생활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대학 게시판에 게재된 L화학의 산학장학생 모집 공고가 그 시작이었다.

면접에서 나의 숨겨진 재능이 발휘되었는지, 예상보다 수월하게 산학장학생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L화학이 속한 L그룹은 인화와 조화를 중요시하는 기업 문화로 유명했기에, 나의 연약한 멘탈에 적합한 직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4학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는 것도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빠르게 3학년 때 취업할 곳을 정해놓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접어두었던 경영학에 대한 욕심도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4학년에 올라가면서, 곧 졸업을 하는 마당에 3전공으로 경영학을 이수한다는 것은 정말 무리였다고 판단했고, 차라리 내 전공인 이공계 엔지니어링과 경영학을 융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고 다양한 탐색을 했었다.

 

그러던 차에 기술경영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침 내가 다니던 학교가 국가 지원 학교가 되어 기술경영 대학원이 생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나에게 너무 적합한 학문이라는 생각을 했고 당장 교수님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해당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는지 상담하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나의 의지는 높게 평가하시면서, 기술경영의 학문 특성상, 학부를 마치고 바로 진학하는 것보다는 산업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진학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해주셨고, 나는 그 말씀이 매우 합당하다고 판단하고 우선 직장을 다니면서 현장의 경험을 쌓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나니 이왕 기술경영을 하려면, 현장 경험도 기술경영과 연관된 곳에서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국내에서 기술경영과 관련된 직장이 어디있는지 탐색을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S전자의 기술총괄이라고 하는 곳이 국내에서는 기술경영에 대해 전문적인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4학년 1학기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하였다.

주변에서는 S전자의 기술총괄은 최소 석사들 이상이 가는 곳이고, 학부출신이 들어가면 뒤치닥거리만 하게 될 것이라고 차라리 L화학을 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였지만, S전자라고 하는 것이 가지는 상징성과 기술경영이라는 새로운 목표 때문에 열심히 취업을 준비했고 결국 최종합격하게 되었다.

그당시 나는 나의 고민과 노력의 결실을 얻게된 것 같이 매우 기뻐했고 나의 앞날이 밝을 것만 같았다.

 

그 이후 남은 4학년 때에는 겉멋이 들어서 H자동차, S텔레콤 등 쟁쟁한 회사의 경영지원 부서에 지원을 하였고 당연하게도 서류에서 탈락했지만 이미 취업은 확정지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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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을 마무리할 즈음, 나는 진로에 있어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단일 전공으로는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현실 앞에서, 복수전공이라는 선택지가 내 앞에 놓였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복수전공을 통해 자신의 전공을 보완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전기전자공학을 복수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내 전공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나의 기술적 역량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보였다.

 

그러나 내 마음 한편에는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가 이원화 캠퍼스로 운영되고 있어, 문과와 이과가 각각 서울과 수원에 위치해 있었기에, 경영학 복수전공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꿈이었다.

 

하지만, 3학년 1학기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나는 점차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너무 몰아세웠고, 그 압박은 곧 내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울증이라는 현실과 마주하면서, 나는 학업은 도외시하고 회복에 전념해야만 했다.

교내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으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서서히 내 정신 건강을 회복해 나갔다.

 

나는 공학이 내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내 정신적 건강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는 내가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학문을 깊게 파야만 하는 석사/박사로의 진로도 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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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전역하고 대학교 2학년 1학기로 복학하기까지의 반년 동안, 나는 황금 같은 젊은 시간을 허투루 놀리면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 때문에 A연구소라고 하는 국가 연구소의 학연학생과정을 경험하기로 하였다.

이 경험은 내가 공학, 특히 고급 학위를 지닌 연구자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선입견을 더욱 굳혔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나는 석사와 박사 선배들을 보며, 그들의 삶이 내가 꿈꾸는 사회생활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연구실에서의 그들은 내가 상상했던 양복을 입고 업무를 처리하는 프로페셔널한 모습과는 달리, 허름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담배를 피우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나에게 공학 분야, 특히 연구자의 삶에 대한 거부감을 심어주었다.

 

원자력연구소에서의 경험은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시켰다.

연구소의 박사 출신 연구원들은 항상 갑갑한 연구실에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무엇인지 모를 복잡한 기계들 사이에서 일하는 모습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과연 이공계가 내가 갈 곳이 맞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그렇게 소득 없이 휴식시간 아닌 휴식시간을 보낸 이후 나는 복학을 하게 되었고, 흔히 말하는 군대효과(복학효과)로 1학년 때와는 다르게 정신을 번쩍 차려서 학업에 열중했었다.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공계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었지만,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떨쳐내고 2학년 동안 학업에 전념했다.

 

1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되었을 때, 나는 엉망진창이었던 1학년 때의 학점을 만회하기 위해 대부분의 과목을 재수강하기로 결정했다.

계절학기라고 부르는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에 가졌던 열정은 사그라들게 되고 서서히 힘들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게 되었고 계절학기에 이은 정규학기 때에도 기본 학점인 20학점보다 많은 23학점을 이수하면서 2학년 말에 우수한 성적과 장학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지쳐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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